하나, 둘, 셋 김치

하나, 둘, 셋 김치

하나, 둘, 셋 김치

카메라를 들고 시골에 간적이 있다. 2018년, 7년전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허리를 삐끗한 상태였다. 동시에 친구의 사진을 동경하며 구매한 카메라는 정성스럽게 먼지가 쌓여가는 중이기도 했다.

걷는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가기로 했고, 가만히 서있기에는 어색하니 카메라를 들고 가기로 했다. 당시 계획은 대가족이 김장하는 모습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틀동안 카메라는 메모리카드를 빼곡히 채워갔고, 나는 메모리카드의 사진과 영상을 하드디스크에 옮겨 담았다.

그러곤 할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그 때 찍은 사진 어디갔냐고 물어봤다.

7년이 지났다. 올해도 여전히 김장이 예정되어 있다. 김장은 수능 언저리. 11월 서너번째 주 주말. 얼마전엔 고구마를 캐고 왔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사진 어디갔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웃으며 넘겼다. 머릿속으로 이번엔 진짜 만든다고 생각했다.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면 내가 반찬이 맛있다고 할 때와 정반대의 표정으로 속상해하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슬슬 정장이 한 벌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마음을 무겁게 빙빙 맴도는 중이었다.

7년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몸쓰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본격적으로 찍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퍽 건장해졌고, 어른들은 나이를 먹어갔다. 나는 시골의 모임을 사랑했으므로 이 모임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백점만점 튼튼한 신체는 아니지만 스물여섯 아픈 곳 없는 청년이 움직이지 않으면 누가 움직인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7년이 지나갔고, 책을 만들며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먹먹해졌다.

가끔 시골에서는 할아버지가 농사를 정리하셔야 하지 않냐고 식탁에서 가볍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가 다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내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너희는 오지 않을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생각이 폭풍에 휩쓸렸다. 할아버지와 나의 나이 차이를 실감했다. 그 말은 평생 남아 가족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할 것이다. 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모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골에 일을 도우러 갈 때마다 특정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다분히 의도된 것이다. 모여서 함께 지내니 참 좋다고. 일하다 다쳐서 할머니에게 상처를 보여주면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약을 발라주는 것도. 밭에서 난 식물과 시장에서 사온 고기들의 밥상도. 캄캄해지도록 이모부 삼촌들과 술을 마시며 고민을 나누는 것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다. 만족스럽고 비현실적이다. 감독이 있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일 것이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말을 나누는 사이. 그들로부터 전해받은, 가족의 정의를 점검한다.

하나, 둘, 셋,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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